반응형

이명이 발생되게 된 적은 작년 11월 경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2019년 11월 14일부터였다.

이렇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나의 메모 습관 때문이다.


처음 이명이 발병했을때가 머리속에 명확히 기억난다.

잠을 청하고 일어나서 씻으려는 찰라,

머리속에 알 수 없는 굉음이 울려대기 시작했고

이내 나는 샤워 도중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아마 신체에 이상 반응으로 인해 심적 부담을 느껴 그랬던것 같다.

그때 당시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쓰러질 것만 같았던 기분이다.

난생 처음 겪는 신체적 느낌에 나는 큰 두려움에 쌓였다.


119를 부를까 하다가 호흡이 진정되는 것을 보고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의사는 돌발성 난청을 의심하였고, 외래 진료를 볼 것을 요청했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머리속에 굉음은 울려대고 있었다.

마치 내 몸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것을 나에게 알려주듯이 말이다.

나는 또 심각한 근심에 빠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이명 증상이 생긴걸까?"

"왜 나는 이렇게 고치기 힘든 병들만 생기는 것일까?"

정말 많이 우울했다.

 

금방 없어질 것 같았던 이명 증상은 계속 나를 괴롭혔고

이런 이명 증상들로 인해 밤에 잠을 쉽게 청하기가 힘들었다.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는 '불면증'...


나의 이명 증상은 정확히 이렇다

그릇 소리나 날카로운 소리를 들으면 귀에서 고막이 움직이는

청각과민 증상과 함께 귀에서는 고주파 이명 증상이 24시간 울렸다.

귀에서 삐~ 소리가 나는 것도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그릇 부딪히는 소리, 큰소음, 티비소리 등 어떠한 소리에도

내 고막은 바스락 바스락 걸리는 현상이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신경은 더욱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증상은 점점 악화만 되고 있었다.

외래진료를 보러 대학병원에 방문하니 우측 백사(고막주사)를 처방했다.

이후 귀는 물에 가득 차 있는 증상으로 나를 또 괴롭히게 되었다.


나는 청각과민과 이명이 두려워 회피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회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뇌가 이러한 소리들을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뭘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이후 이와 같은 소리를 내가 자꾸 피하게 되면

뇌에서 싫어하는 소리로 받아들여 청각과민이 평생갈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를 받아드리기로 마음 먹었다.


남들은 듣지 못하는 이명 증상과 청각과민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아니 수백번 절망하고 좌절하며

눈물 한번 없는 내가 눈물을 쏟아내는 상황이 자주 생겼다.


하지만 내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4개월이 지난 후 부터는 청각과민증상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고

청각과민이 좋아지면서 이명 증상 또한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매번 밤마다 백색소음을 틀고 자면서 이명을 인지 못하게끔

훈련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던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순간에는 이명 증상이

내가 집중하지 않으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물론 청각과민도 90% 이상 호전되었음을 내가 느끼고 있다.


보통 청각과민과 같이 동반된 이명의 경우,

그리고 청각 저하가 없이 이명 증상이 발생하는 단순 이명의 경우는

시간이 흘러 좋아지는 경향이 많아진다고 한다.

내가 그런 케이스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난청이 동반된 이명의 경우에는 쉽게 회복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명이 많이 좋아진 후로 비소리가 정말 좋아졌다.

본래 예민한 성격 탓에 그 어떤 소리도 들리면 잠을 못자는 편이었으나

요즘은 비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지금 이명 증상으로 고통받는 분이 내 글을 보고 있다면

너무 좌절하지 말고 우울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겪어봤기에, 남들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나는 알기에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지 진심으로 안다.

하지만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란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지비요

건강염려증 남편과 물리치료사 아내의 티스토리 공간

,